2020년10월24일 32번
[과목 구분 없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 ① 근우회의 후원으로 확산되었어요.
- ② 조선 총독부의 방해로 실패했어요.
- ③ 김홍집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어요.
- ④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어요.
(정답률: 57%)
문제 해설
정답> ④
'이것은 대구에 세워진 국채 보상 운동 기념비입니다. 이 민족 운동에 관한 내용을 대화창에 올려주세요'라는 요청이 나와 있다. 이어 '국채 보상 기성회가 주도했다'는 답변, '당시 여성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모아 성금으로 내기도 했다'는 답변이 제시되어 있다.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2월에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
오답 해설>
① 근우회의 후원으로 확산된 것은 여성 (지위 향상) 운동이다. 근우회는 신간회의 자매 단체의 성격을 가지며 1927년 5월에 조직되었다.
② 국채 보상 운동은 조선 총독부가 아니라 통감부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조선 총독부가 세워진 것은 한일 병탐 직후인 1910년 10월의 일이다.
③ 도원 김홍집(1842~1896)은 온건 개화파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1880년에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되었으며(귀국 시 『조선책략』을 가져와 고종에게 올림), 1894년에 총리대신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하였다.
'이것은 대구에 세워진 국채 보상 운동 기념비입니다. 이 민족 운동에 관한 내용을 대화창에 올려주세요'라는 요청이 나와 있다. 이어 '국채 보상 기성회가 주도했다'는 답변, '당시 여성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모아 성금으로 내기도 했다'는 답변이 제시되어 있다.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2월에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
오답 해설>
① 근우회의 후원으로 확산된 것은 여성 (지위 향상) 운동이다. 근우회는 신간회의 자매 단체의 성격을 가지며 1927년 5월에 조직되었다.
② 국채 보상 운동은 조선 총독부가 아니라 통감부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조선 총독부가 세워진 것은 한일 병탐 직후인 1910년 10월의 일이다.
③ 도원 김홍집(1842~1896)은 온건 개화파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1880년에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되었으며(귀국 시 『조선책략』을 가져와 고종에게 올림), 1894년에 총리대신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하였다.